'드립백'이 등장했습니다.
네, 비상이 걸린 겁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유락yoorak에서 드립백은 '전설의 포켓몬' 같은 겁니다. 희귀하고 귀중하기가 이를 데 없는 비범한 자원입니다. 정말 특별할 때가 아니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첫 등장, 프로젝트 비주류 에피소드1 때였습니다. 당시 낭젊사에서 열린 팝업스토어에서 '자율입금제'로 드립백(제로커피)을 팔았습니다. 대구의 청년 아티스트에게 전액 기부를 전제로, 하루 안에 자유롭게 익명 입금하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대구의 맛'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대구의 맛 참고)
두번째 등장은 지난 10월 진행한 청년 후원 프로젝트 <시詩 삽니다.> 때였습니다. 위에서 거둔 수익을 누구한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대구의 청년 시인에게 시를 한 편 사기로 결정했고, 2주 정도 오프라인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오프라인 투표에 참여한, 거의 모든 분께 드립백을 나눠드렸으니 대략 150개 정도 만들었을 겁니다.(투표를 하시면 드립백을 드립니다 참고)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드립백을 만들게 된 건, 이번 프로젝트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겠다는 강한 우려가 들어서입니다. 해보니 알겠습니다. 안일했습니다. 최초 가설은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타적인 사람이고 싶어 한다, 기회만 슬쩍 제공하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다, 게다가 연말이다, 연말 특유의 훈훈함이 어필할 거다....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뜨뜻미지근합니다. 뒤늦게 아차 싶습니다. 눈 비비고 보니 이제서야 뭔가 좀 보입니다. 단순히 '엽서1:연탄1 기부', '7개 다 모으면 뭔가 줌' 정도론 어림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부분 심드렁합니다. 직감적으로 '아, 이거 왜 이렇게 불안하지..' 했던 이유가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원래 기획의 핵심은 인스타그램 AR 필터를 활용해 구매 인증 챌린지를 유도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엽서에 카메라를 갖다대면 3D 이미지가 확 떠오르게 하고, 그걸 인증하도록 유도해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흥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첫 단추였지만 결과적으로 구현이 되지 않았습니다.(에온드에온 엽서는 구현됐으니 꼭 구매해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다보니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충분히 열심히 준비했잖아...' 하고 합리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AR기술을 쓴다고 해서 사람들 관심이 크게 몰렸을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사람들 관심을 유도할 장치, 이를테면 "이런 신기한 게 있는데 한번 해보시겠어요?" 한마디 건넬 명분을 잃었다는 게 뼈아픕니다.
"....결과가 안 나와도 뭐 어쩔 수 없죠 뭐. 기부란 것에 회의적이던 제 태도가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바뀌었다는 거, 그 하나만으로도 저한텐 충분히 의미 있는 거 같아요."(나니)
오늘 아침 대구모닝커피클럽DMCC이 끝나고 낭젊사 나니와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우려를 토로하다가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기부에 대한 본인 생각이 이번을 계기로 바뀌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보자 마음먹었단 것. 남들 100장 만들 때 무려 400장이나 엽서를 만든 나니는 사비를 털어 엽서 관련 굿즈를 추가 제작하기까지 했습니다. 어쩐지 덩달아 의욕(?)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오픈 전 부랴부랴 기계들을 꺼내 드립백을 만든 까닭입니다.
아무튼 그 명분, 글을 쓰든 굿즈를 만들든 뭐가 됐든 계속 만들어보겠습니다. 하는 데까진 해보려 합니다. 다음화에선 정말 왜 연탄인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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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Notes
- → 대구의 맛
- → 투표를 하시면 드립백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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