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화에선 왜 연탄인지, 얘기해보겠습니다"......라고 말을 꺼내긴 했는데, 선뜻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걸 쓰겠다고 쓰고 지우길 반복합니다. 스스로 추측하기로, 이 프로젝트 성격은 공적인데 연탄에 관한 경험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어떤 부조화가 제 내면에 생겼기 때문 같습니다. 어떻게든 공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해보려는데 그게 참, 잘 안 됩니다.
마지막 비주류 회의 때도 그랬습니다. 연탄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꼭 연탄이어야 하죠? 연탄 그거, 너무 보여주기식 아닌가요? 국회의원들처럼 얼굴에 일부러 재 묻히고 사진이라도 찍을 건가요?"
"... ..."
어찌저찌 기부 쪽으로 큰 가닥이 잡혔지만, 이번 에피소드 최종 목표인 연탄이 잘 와닿지 않는단 지적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너무 보여주기처럼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 듣고보니 뒤늦게 아차, 왜 나는 아무 의심없이 연탄부터 떠올렸을까,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급하게 목도리, 털장갑 같은 방한 용품 등을 물색했지만 시간과 현실적인 제약들 탓에 최초 염두에 두었던 연탄으로 결정된 겁니다.
어찌됐든 이 계절 연탄은 인간 존엄의 보루이자 저지선.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우리가 진정성을 잘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 의견을 모았습니다. 내심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연탄에 대한 기억과 감각이 모두 제각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연탄이란 단어에서 온기를 떠올리기도, 가난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어느 시 구절을 떠올리기도, 높으신 분들의 가식과 위선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마다의 인상이 이번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을 깎는 데 한몫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연탄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미지의 대상입니다. 연탄이 그렇단 게 아니라 연탄을 둘러싼 개인적인 경험과 인연들이 그렇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사회 초년병 시절까지 연탄봉사를 꽤 오래 했습니다. 햇수로 따지면 3~4년쯤 될 겁니다. 계기가 조금 특이했는데 쉽게 말해, '나는 정말 이타적인 사람인가' 알아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겁니다.(이상하게 들릴 수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만 정말 그랬습니다..) 거기서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저에겐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이 사람들, 진짜 좋아서 하는 걸까?' 이 의문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 건,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봉사란 행위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 '나는 왜 저들처럼 못될까..' 늘 괴로워할 따름이었습니다.
요컨대 그 시절 저에게 연탄이란 또다른 내면의 자아가 억지로(?) 마주시킨 괴로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질기게 붙들었던 연탄봉사의 성과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우리 사회 밑바닥을 취재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연탄이 있었던 겁니다. 그 시절 다른 기자들이 맡지 못한 퀴퀴한 가난의 냄새를 곧잘 캐치해냈던 건, 그 풍경이 제 안에서 꽤나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경로가 분명한 그 감각이 그 시절 꽤나 요긴하게 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 전, 12년 전 제 탐구 대상 중 하나였던 어떤 분께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연탄이 필요하다. 주변에 더 알려달라.' 이분, 제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4~5년 했었으니, 이제 근 20년 동안 연탄봉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 이분은 제가 대구에 내려온 것도 몰랐을 겁니다. 말하고보니 억지로 짜맞춘 것 같기도 합니다만...아무 의심 없이 '기부=연탄' 하고 떠올렸던 건 아마 이 문자 때문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저에겐 탐구 대상입니다. 이쯤 되면 간파하셨겠지만, 제가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회의 때 나왔던 지적처럼 어찌 보면 이번 에피소드의 본질은 위선僞善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가식과 허영심의 발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날 사회 맨 밑바닥을 탐구하며 제가 배웠던 건, 그런 알량한 위선마저 없다면 누군가의 삶과 존엄은 거짓말처럼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아이러니였습니다....
...
...?
...네, 방심하면 꼭 이렇게 됩니다. 글이 주인을 닮아 재미없고 무거워집니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의 목적은 엽서 판매(!!)입니다. 꼭 무슨 대단한 의도와 선의가 없어도 누구나,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진심 어린 연민과 이타심도, 위선과 허영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부디, 저희가 여러분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D4TsgdTh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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