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삽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사장님,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 금액이라면.. 음, 그림하는 친구들은 별로 안 고마워할 가능성이 높아요. 귀한 돈인데.. 정말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난 비주류 팝업에서 거둔 수익금 35만1245원(비주류 팝업 결과 참고)을 어떤 청년 아티스트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힌트라고는 '청년', '대구', '예술' 정도뿐이었습니다. 마침 유락yoorak을 찾은 예술가 B(B는 예술가입니다 참고)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요컨대 그의 의견은, "적어도 100만원은 모아서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쩐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읭? 싶었습니다. "그렇지만.."이 입밖으로 울컥, 터져나왔습니다. 이 돈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B는 단호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두들기더니 미술용품 사이트를 찾아 눈앞에 들이밀었습니다. 언뜻 보이는 금액들이 무시무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제대로 된 캔버스 한두 개 사면 끝"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그의 말을 수긍했습니다.
이것은 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의 말처럼 100만원이 될 때까지 모아서 전달한다. 둘째, 금액은 적지만 눈 질끈 감고 전달한다. 이 둘을 놓고 메트로놈에 달린 저울추처럼 정신없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결론이 즉각 전달 쪽으로 기운 까닭은, 일단 팝업 때 저희가 내세운 취지에 공감해 적잖은 금액을 보내주신 분들이 얼른 '효용'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개인적인 조급함도 한몫했습니다. 매일매일 밥벌이의 고단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으로 기부(후원)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취지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처지 가릴 것 없이 설익은 밥이라도 일단은 먹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걸 만족시킬 순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일단 해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선회한 것이 시詩입니다. 애초 아티스트 분야는 정해놓은 바 없었습니다. 대중예술로서의 시의 탁월함이란, 누구나 쓸 수 있다(물론 잘 쓰기는 무척 어렵습니다..)는 '접근성'에 있을겁니다. 그래서 시인을, 청년 시인을, 대구에 사는 청년 시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시는 유락 3층 프로젝트 <물물物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물물이라는 공간의 기축통화는 '시집'입니다. 그래, 차라리 잘 됐네 싶었습니다. 유락yoorak의 이름으로 산 시 한 편으로 판매용 엽서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썩 잘어울리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찾을 지는 다시 또 고민 중입니다. 아무튼 시를 살 예정입니다. 한 편이면 충분합니다. 아마 '등단하지 않은', '대구 거주', '30세(?) 이하' 정도가 조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저역시 흥미롭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C_U6fxlvo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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