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 한 닢>
요즘들어 종종 난감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게 곳곳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팝업 포스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질문들이 들어옵니다.
"비주류 그거 뭐예요?" "그래서 뭐하는 거예요?" 이정도는 괜찮습니다. 대답이 어렵지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시는 팝업이예요.", "이제 에피소드 1이구요, 앞으로 이것저것 해볼 계획이예요.", "무명無名인 우리들을 사람들한테 소개하려는 거예요." 그러고 마지막엔 꼭 한마디 덧붙입니다. "혹시 8월15일에 바쁘세요?"
이런 질문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거 하는 목적이 뭐예요?", "주류가 되고 싶은 거예요?", "주류랑 비주류는 어떻게 나눠요?" 직전까지 술술 나오던 말들이 목구멍쯤에서 턱,하고 막힙니다. 멈칫,하게 됩니다. 식은땀이 흐릅니다.
대답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이전까지의 대화 흐름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애드립으로 적당히 둘러댑니다. 경험상 '무브먼트'란 단어가 가장 유효했습니다. "저희는 일종의 무브먼트, 파동을 만들려는 건데요, 최종적으로는 서울로 올려보낼 계획이 있..." 온갖 그럴싸해보이는 말들을 서커스 곡예 부리듯 현란하게 뒤섞습니다. 듣는 사람은 아마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해!' 싶었을 겁니다.
보통은 거기까지입니다. 더 물어보진 않습니다. 그렇게 한 고비(?) 넘기고 나면 머릿속에 이 글이 스칩니다. 피천득의 <은전 한 닢>(1959)입니다.
...........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하오(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오(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다음화에서 계속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C-ZmBFivA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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