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락의 정체를 공개합니다(3)
Aug 22, 2024

물론 홍성태 교수님은 저라는 존재를 기억도 못하겠지만 어찌됐든 저는 홍 교수님에게 마음의 빚이 조금 있습니다.

홍 교수님은 명실상부 국내 마케팅(혹은 브랜딩) 구루입니다. <배민다움>(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공저), <나음보다 다름>(조수용 전 카카오 공동대표 공저), <그로잉업>(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 협업) 등을 썼습니다. 2022년 출간한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은 홍 교수님의 모든 정수가 남김없이 담긴 책으로, 브랜딩 업계 "교과서"로 평가됩니다.

홍 교수님이 원래부터 이런 지위(?)에 있었던 건 아닐 겁니다. 여느 학문들 모두 그렇겠지만 경영학은 특히 '돈 잘 벌면 그게 정답'이어서 여러 학파와 이론들이 서로 치고받는 각축전角逐戰이 끊이지 않는 곳입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전장戰場에서 최종 승리(?)한 것으로 보이는 홍 교수님의 "무기"는 심리학입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으로,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 무의식을 탐구하는 '인지심리학'이 주무기입니다.

홍 교수님의 가르침을 감히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은 무의식에 관한 학문이면서 동시에 기억에 관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 체계는 무의식적으로 내러티브에 반응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홍 교수님 접근은 브랜딩은 어떻게 인간 무의식과 기억을 장악하느냐 싸움이며, 거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내러티브라는 것입니다.

학부생 시절 꽤 쓸만한 얘기군, 하고 말았던 '내러티브'라는 단어가 다시 삶에 슬금슬금 나타난 것은 기자 시절 탐사보도팀에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한 선배로부터 "미국 기자들은 이렇게 기사를 쓴다고 하니 참고해봐라"며 하버드 니먼재단이 펴낸 <진짜 이야기를 쓰다>라는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습니다. 머리가 띵, 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누군가 '네 인생에 선을 몇개 그어보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 순간에다 한 줄 그어넣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그토록 찾아헤매던 "진리"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꽤 오래 전부터 그런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주제를 수달, 수년 동안 깊게 취재해 캐릭터와 서사를 발굴하고 소설처럼 쓰는 '내러티브 논픽션'이, 아포칼립스 바로 직전처럼 황폐해진 우리 언론을 구원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패배의식이 팽배한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그토록 감응했던 것은, 내러티브 논픽션이란 방식이 과거 대학시절 배웠던 '인지를 장악하는 방식'과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략적으로 잘 설계된 내러티브는 독자의 생각을, 행동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 역시 바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믿고 언론사에 있을 때 많은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무산되곤 했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얘기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내러티브에 푹 빠져 관련 이론들을 공부하며 '언젠간 반드시 쓰고 말겠다'고 거듭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해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이란 책이 나온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저자 4명 모두 '작품'을 쓰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고, 얼마 전 출간된 <뽕의 계보>(유락에 바나나푸딩을 전수한 J가 썼습니다, 유락푸딩 참고)는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하려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유락yoorak은 브랜드이고, (제가 홍 교수님께 배운) 브랜딩이란 '기억'이며, 이를 위해 '내러티브'를 활용해보려 한다는 겁니다.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이것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작동할지는, 적어도 저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확신은 있지만, 없기도 합니다. 그걸 직접 눈으로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유락의 외부로 향하는 방향성이 '기부(후원)'이라면, 내부로 향하는 방향성은 '증명'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재료로 삼아 그 가치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그 가치의 존재를 증명"(내가 좋아하는 글(1) 참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믿으려 노력합니다.

'유락'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다양한 캐릭터와 서사를 발굴하려 애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YOORAK_GALLERY:C--fGIGPrgr.jpg

Universe Discovery 우연한 사유와의 만남
Loading nodes...
Node Map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