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회고를 해야겠다, 마음은 먹었는데 도통 진도가 안 나갑니다.
썼다 지우길 1시간째 반복 중입니다. 글을 이리 시작해도, 저리 시작해도 도돌이표처럼 우울한 소리로 귀결됩니다. 안 그럴려고 안간힘을 써도 자석을 본 철조각마냥 그쪽으로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뭐, 사실이 그러하니 별 수 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유락yoorak이라는 프로젝트는 제 인생 경로에서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져보면 십수년 전 대학시절로까지 거슬러 오릅니다. 취기가 오르면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꼭 삼년상三年喪 할 거야. 꼭 한다. 두고 봐!"
어린 날의 치기라고 보기 뭐한 게 불과 몇년 전까지도 똑같이 떠들고 스스로 '남들이랑 난 달라. 꼭 하고 말거야!' 다짐하곤 했습니다.
도로 주워담지 못하게 물을 와락 쏟아버리겠다는 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저는 명예와 위신을 중시하고 진실된 자신의 모습에 긍지를 느끼는 성격.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붙여 놓으면 어떻게든 움직일 거란 일종의 배수진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물론 여러 사정으로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삼년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결국 저도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로 이 유락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뜬금없이 "나, 대구 내려가서 할아버지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거야." 했을 때 주변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래 잘됐다, 이제 좀 해라..!!' 걱정과 함께 격려와 응원이 돌아왔습니다.
호기롭게 발을 디딘 대구는 춥고 외로웠습니다.
당연한 얘길 겁니다. 이 넓은 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0명. 차원문을 넘어온 이세계물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철거와 인테리어도, 장사도, 커뮤니티 비즈니스도,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길 겁니다. 해본 적 없으니, 별 도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인정합니다. 교만했습니다. 신문사와 스타트업에서 얻은 얕은 경험으로 함부로 판단했고, 지나치게 나이브했습니다. '동대구역이랑 대구역 사이네? 오, 도시 한가운데잖아? 완전 좋은데..?' 여기부터 판단미스였습니다. 막연히 '내가 진실되게 효용을 만들어 내면 사람들은 당연히 따라올 거다'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유락이 위치한 이 동인동 구석은 지난 수십년간 편의점 하나, 구멍가게 하나 없었던 불모의 공간. 낮 유동인구가 0에 수렴하는 탓에 웬만한 구력으론 얼씬도 할 수 없는 천애의 험지였습니다. 그런 어리숙한 생각으로 비벼볼 만한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6개월이 중요했습니다. 언젠가 낭만젊음사랑의 나니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와 이거, 진짜 심각한데요..? 저였으면 절대 못 버텼을 거 같아요. 이제 좀 전략을 좀 바꾸시는 게.." 매출이 저 아래 심연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였습니다. 짐짓 의연한 척 답했습니다. "사람들한테 6개월로 못박았잖아요. 어쩔 수 없어요. 6개월은 무조건 원래 계획대로 갈 거예요. 두고 보세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바닥은 바닥이 아니었고, 바닥 아래엔 무한한 얼굴의 바닥이 다시 존재했습니다. 지난 6개월은 바닥의 온갖 얼굴과 함께 내 의지의 얼굴을 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잠깐 방심하니 손가락이 다시 우울 쪽으로 글을 끌고 갑니다. 사실 다 쓸데없는 이야깁니다. 세상에 안 힘든 자영업자 없으니, 나 이만큼 힘들었다라는 얘기는 사람들의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것입니다. 사실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높았던 콧대가 부러진 게 큽니다. 부끄럽지만 '더 성장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인생이란 벽을 마주하고 겸손함을 갖추게 된 것이 이곳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일 겁니다.
지난 주말 대구의 한 청년 아티스트에게 유락yoorak의 이름으로 시詩 한 편을 구매했습니다.
어찌됐든 스타트는 끊은 겁니다. 쏟아놨던 물이 돌고돌아 결과로 돌아온 겁니다. 다시 물을 쏟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제가 사랑한 유락有落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사람들 입에 자꾸 오르내리게 만드는 겁니다.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이 이름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긍정적으로 남게 만드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삼년상 못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CgXThYz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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