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 지났습니다.(3/3)
크리스마스 이튿날, 망글이와 모종의 장소(유락..)에서 접선했습니다. 목적은 빚(?) 청산. 이날은 유락yoorak 휴일이자 조만간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망글이가 짬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망글이! 저한테 오늘 몇시간 쓸 생각이었어요?"
"한 4~5시간요..?"
"망글이!!! 우린 친구인가요?"
"네..? 넵!!"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시길래.."
"호옥..시 괴산까지 운전 좀 해줄 수 있나요?"
"...........???"
원래 이날은 망글이가 그동안 무전취식해온 바나나푸딩의 대가로 유락에 시급한 각종 디자인을 해주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아트커머스플랫폼 에온드에온 대표인 망글이의 전직은 잘나가던 브랜드 디자이너. 제가 디자인 문제로 끙끙대는 걸 알고 망글이가 선뜻 나서준 것입니다.(물론 한참을 미루고미루다 이날에서야 만난 것이긴 합니다)
망글이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저는 거의 1주일 전부터 MBTI 'J'에 빙의해(원래는 P의 화신입니다) 1번부터 7번까지 순서대로 해야할 것들, 가이드, 레퍼런스 등을 쫙 리스트업 해놓기도 했습니다. 뽕(?) 한번 제대로 뽑겠다, 마음 먹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겁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망글이처럼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노예(!!)처럼 부려먹기란, 길에서 주운 로또로 3등쯤 당첨되는 행운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크리스!!! 괴산? 그 충북 괴산??? 아니, 왜요!!! 저 차 정비도 안 해놨고.. 그렇게 멀리 고속도로 운전해본 적도 없다구요."
"제가 차도, 운전면허도 없잖아요.. 대중교통으로 가면 가는 데만 최소 6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네이버지도 찍어보세요. 미안한데, 부탁 좀 할게요."
"아니, 갑자기 웬 괴산이예요. 크리스도 같이 가는 건가요? 아님 저만?"
"아.. 사실 거기에 할아버지가 계세요. 괴산호국원.. 유락 시작하고 딱 한 번 갔던 거 같아요. 오늘 아니면 정말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요. 부탁할게요."
"...할..할아버지요??"
"..."
"....빨리 일어나요 크리스. 갑시다. 으아아 괴산이라니!"
그렇게 떠난 망글이와의 모험(?)은 별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만나 다시 대구 도착했을 때 5시가 좀 넘었을 때니 장장 5시간쯤 운전을 해준 셈입니다.(망글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괴산에 다녀온 까닭은, 유락이라는 프로젝트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길을 잃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였습니다. 쉽게 말해 멘탈이 너덜너덜해지는 주기가 점점 더 짧아져서 그렇습니다. 장사, 정말 쉽지 않습니다. "유락"이란 할아버지 이름까지 갖다 쓴 주제에 할 소린 아니겠지만.. 사실 망글이와의 괴산행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비주류 팀원들은 알겠지만 늘 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삽니다. "디자인만 되면.. 디자인만 되면.." 빠질 줄 알았던 앓던 이를 아그작 깨문 기분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크리스 울었어요?? 에이~ 울었죠!!"
묘역에 다녀오니 망글이가 묻습니다. 웃음과 긴장이 살짝씩 묻어나는, 위로의 채비를 갖춘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마 뭔가 극적인 장면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눈물도, 곡소리도 없었습니다. 이럴 때 내가 눈물이 났었나, 전에 왔을 땐 어떤 감정이었지, 지금 내 얼굴이 어떨까, 한참을 고민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왔을 뿐입니다.
지난 6개월은 기획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질릴 정도로 기획'만' 했던 것 같습니다. 기획자의밤 때 기획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게 기획이란 첫 출발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온갖 소음 속에서 첫 마음의 소리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레전드 다큐 작가 김옥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획이 필요한 것은, 수없이 헝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시켜주는 방향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다큐의 기술)
신기합니다. 다녀오니 흔들리는 마음이 조금씩 다잡힙니다. 갔다오면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프로젝트 유락의 기획 의도는 '유락有落이란 이름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 그래서 이 이름을 사람들 뇌리에 긍정적으로 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진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목표는 같습니다. 유락이란 이름이 더 오르내리길 바랍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ER3NbwT0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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