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동물
Nov 22, 2025

유락 3층에 독립서점이 생깁니다.

이름은 <야행성동물>. 시간날 때 틈틈이 그 얘기나 좀 해보겠습니다.

뭘 모를 때(유락 만들 때)가 좋았습니다. 별 고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있어도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그래, 어차피 모르는데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냥 일단 이렇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중에 바꿔보지 뭐!'

뭘 모르니 다 '일단 해보는' 거였습니다. 뭘 모를 땐 뭐든 시원시원하게 결정했는데, 이제는 뭐 하나 정할 때마다 시름만 깊어집니다. 한 번 발을 떼면 돌아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단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고심 끝에 결정한 <야행성동물>의 비주얼 컨셉은 '빈티지 오피스'입니다.

녹슨 철제 책상과 낡고 두툼한 철캐비넷, 멋들어진 붓글씨나 인물 사진이 들어간 액자, 좌우로 긴 데스크 램프,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 동그란 벽시계..

50~60년대 미국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오피스 풍경입니다. 우리나라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 80~90년대 경찰서 분위기가 딱 이런 느낌입니다.

어떤가요? 꽤 그럴듯해 보이지 않나요?

네, 몇 주 전부터 유락 마당에 차곡차곡 쌓이던 고물(?)들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쩐지 이미지적으로 겹치는 곳이 없을 것 같단(적어도 서점 중에는 말이죠) 생각에 스스로 꽤나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원래부터 이 컨셉이었던 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달까요.

이번 독립서점 프로젝트의 핵심 키워드는 '저예산'.

아니, 정확히는 '초저예산', 더 정확하게는 '초초초초초초저예산'이 맞을 겁니다.(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액수일 겁니다. 궁금하시면 유락으로..)

남들처럼 목수 불러서 수제로 만들긴커녕 번듯한 중고책장 하나 사기도 빠듯한 예산.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돈을 안 쓰면서도 없어보이지 않을까..' 궁리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당근에 올라온 3만원짜리 철캐비넷이었습니다.

'어라? 이거 문짝만 뜯으면 완전 책장이겠는데..? 책장을 꼭 나무로만 하란 법 있나? 그러면 다른 기물도 철제로..?'

눈이 번뜩였습니다. 네,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기에까지 (물론 아직 현실화된 건 없습니다..) 이른 것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습니다. 장사를 해보니 알겠습니다. 안성재급 요리 실력이 아니라면 공간-콘텐츠-서비스 이 삼박자가 제대로 쿵짝쿵짝 맞아야 뭐가 됐든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뛰어드려는 서점씬(?)은 가뜩이나 비좁고 황량한 레드오션 그 자체. 각별한 새로움 없이는 생존이 더욱 어려울 겁니다.

<야행성동물>은 '일단 물쏟고 수습하기' 병이 도져 시작된 것입니다. 이 무대책 개시병의 결과가, 상상이 얼마나 현실화할지, 이제는 저도 궁금해집니다.(실시간으로 쪼그라드는 통장 잔고에 내심 '이거 맞아..?' 싶기도 하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네요)

다음 글에서는 요즘 최대 고민인 '콘텐츠', 어떤 책을 어떤 맥락으로 어떻게 최대한 합리적으로 구비할 건지(책 살 돈이 정말 얼마 없어서 그렇습니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일단 쏟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y.h.s.d.m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RW7uiDky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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