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분께 추천 받아 동성로에 있는
기름이 둥둥 떠있는 뜨거운 육수에 푹 담가진 면을 젓가락으로 한움큼 집어올린 뒤 후후 불며 입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문득, 나의 '피'는 무엇으로 되어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제 피를 분석해보면 매우 높은 확률로 분석이 불가능한, 엉망진창의 결과가 나올 겁니다. 빗자루로 쓸다 만 거미줄처럼 각종 유전자가 지저분하게 뒤엉켜있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준비를 할 때는 중앙일보 권석천 기자나 한겨레 안수찬 기자 글을 닮고 싶었습니다. 호흡이 짧고 간결합니다. 남을 때리는 데 도가 튼 복서처럼 툭툭, 끊어 칩니다. 그러다 슬슬 때가 됐다 싶으면 묵직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냅다 휘갈깁니다. 통찰을 담고 여운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2012)라는 책에서 안수찬 기자는 이른바 '끊어 치기'를 예찬합니다.
...모든 문장은 구질구질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어코 애를 써서 '끊어 쳐내는' 호흡으로 써야 한다. 끊어 치기는 만병통치약이다. 감동적인 연애편지를 쓰고 싶은가. 끊어 쳐라. 괜찮은 소설을 쓰고 싶은가. 끊어 쳐라.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 기사를 쓰고 싶은가. 당연히 끊어 쳐라...
안수찬 기자를 비롯해 한겨레 기자들 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 끊어 치기 신공神功은 꽤 많은 기자들이 믿고 쓰는 방식이며, 저 역시 한때 열렬한 예찬론자 중 하나였습니다. 안 선배가 쓴 <쫄지 마! 실전 매뉴얼이 여기 있잖아 – 불심검문 대처법>(2009), <불안을 잠식하는 과자>(2010) 같은 글을 보면 어떤 말인지 대충 이해가 갈 겁니다.
언젠가부터는 지금은 고인이 된 마광수 교수, '푸른눈의 한국인' 박노자 교수 글이 입맛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부득이 글을 써야할 일이 생길 때면 마광수의 <생각>(2013)이나 <박노자의 만감일기>(2008) 같은 책을 펴보곤 했습니다. 이 두 사람 글에는 늘 냉소가 깔려있습니다. 그 비릿함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 '솔직함' 때문일 겁니다. 이 사람들의 글을 보면 '그래, 솔직한 게 정답이야. 남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위선자가 되지 말고 진짜를 쓰자' 다짐하게 됩니다.
몇년 전부터는 예술평론가 반이정의 글을 도박판에서 밑장빼기하듯 하나둘 슬쩍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제가 보기엔 '경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난해하고 어려운 미술 개념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데에 도가 텄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정작 하려던 말이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정신차려보면 꼭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반이정의 글은 송곳처럼 뾰족합니다. 샛길로 샌다싶다가도 본류로 다시 끌고와 보자기싸듯 매듭지어버리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사물 판독기>와 <예술 판독기>처럼 하나의 글감을 놓고 기상천외하게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건 그의 집요함과 관찰력 덕분일 겁니다.
요즘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그중에서도 가벼운 에세이(사실 아직까지도 저는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를 종종 읽습니다. 아니, 틈틈이 베껴쓰고 있습니다. 그가 쓴 에세이는 맛있습니다. 쫀쫀합니다. 그처럼 맛있게 글 한번 써보는 게 평생 소원입니다. 물론 생각처럼 잘 되진 않습니다. 어불성설일 겁니다. 하루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200자 원고지 20매는 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입니다. 어설프게 따라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최근에는 하루키의 <우동 맛여행>,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노트에 고대로 베껴썼습니다.
그밖에도 장정일 작가, 모교의 김성현 교수님, 고 이어령 장관, 소설가 박완서와 김훈, 법정스님, 진중권 교수, 정희진 작가, 같은 회사 선배였던 김태훈 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같은 사람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아무튼 저의 몸에는 꽤 복잡한 형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글쓰기가 엉망진창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뭐 이딴 걸 썼지' 생각이 들 때면 "글에는 정답이 없잖아?" 곱씹으며 애써 무시하면 그만입니다.(사실 어떨 땐 스스로 쓴 글을 보며 '뭐,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잖아?' 하며 남몰래 우쭐대기도 합니다.)
아무튼 다음 글에선 진짜로 앞으로 모각글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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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instagram.com/p/C_DCVqIP4_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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