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27일.
홍철이를 유락 지하실에서 발견한 날입니다. 딱 1년 전이죠. 어미 없이 홀로 지하실 구석에 몰래 숨어있는 걸 정말 우연한 계기(옛날에 쓰던 종이컵 가지러 갔다가)로 발견했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몸. 퉁퉁 부어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외계인 같은 눈. 당시 수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이것 때문에 어미에게 버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더군요. 약한 개체의 운명이란, 인간 사회나 고양이 세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둬키울 형편은 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키울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백방 수소문했지만 아픈 길고양이를 거두겠다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홍철이와의 우당탕탕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2025년 유락의 키워드는 '좋은'이었습니다.
모각글 유저들에게 무엇이 '좋은 글'인지 제시해야 했고, 비주류 앙데팡당전을 준비하며 무엇이 '좋은 기획'인지 고민해야 했으며, 독립서점을 열며 무엇이 '좋은 공간'인지, 또 무엇이 '좋은 책'인지 정의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전/후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글, 좋은 기획, 좋은 공간, 좋은 책... '좋은' 것들은 그것을 겪고 난 뒤의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가령 읽고난 뒤 자신을 괴롭히던 고민이 사라지거나 마음가짐, 태도가 바뀌었다면 그것은 좋은 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큰 변화를 가져다주면 줄수록 더 좋은 것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홍철이와의 1년은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홍철이와 함께하며 저는 많은 부분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말이죠.
이제는 결혼 전이나 출산 전 동물을 꼭 한 번 키워보라 권하게 되었을 정도로, 그동안 몰랐던 삶의 이면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민을 느끼는 내 안의 감각 기관이 더 커진 것도, 길고양이를 볼 때면 꼭 한 마디씩 건네게 된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입니다.
중력 같달까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에게 사라진 그것.(그 때문에 제가 별 고민 없이, 연고도 없는 대구에 무작정 내려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홍철이 밥 주고 물 주고 놀아주고 화장실 비워줘야 하니 옛날처럼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훌쩍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굴레(여행 한 번 맘대로 가기 어려워졌으니까요), 어떤 면에선 뜻밖의 가족이 생긴 셈입니다.
홍철이의 이름은 방송인 노홍철에서 따온 게 맞습니다. 길바닥 출신으로 큰 성공을 거둔 노홍철처럼,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게 큰 사랑 받는 고양이가 되란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습니다.(사람들의 무수한 질타와 손가락질 속에서 끝끝내 지켜낸 이름이기도 하죠)
홍철이 인생이 이름 따라 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홍철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며 사랑을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홍철이를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Syuogmkzw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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