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장수

Chris · Apr 13, 2026

나는 지난 칼럼에서 "자고로 기획이란…" 하며 꺼드럭댔다. 강연에서도 그랬다. 내 나름의 '기획 10계'를 급히 지어냈는데, 참가자들 얼굴을 보며 내심 '이래도 될까…' 하고 제법 양심에 찔렸다. 눈빛들이 어찌나 초롱초롱하던지!

기획자로서 나의 약점은 명확하다. '돈'을 못 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늘 이런 식이었다.

"창수야, 너는 광고나 부수 확장 같은 거 생각하지 마! 그냥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해. 그런 건 선배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신문사에 있을 때 높으신 분들께 자주 듣던 말인데, 덕분에 정말 맘껏 기사를 썼다. 탐사팀에 있을 때는 서너 달에 기획 하나를 내놓았는데, 특혜를 받는 것 같아 늘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스타트업 때는 또 어떤가. "우리의 무기는 오로지 '돈'입니다. 아무쪼록 최대한 돈을 쓰는 쪽으로 고민해 주시고…" 이런 얘기들이 일상으로 오갔고, 실제로 매일 현금 '100만원'씩 아무 조건 없이('좋은 글'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몇 달을 뿌리는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곳을 나와 직접 스타트업을 차렸을 때 내 담당은 앱 기획 및 개발 쪽이었고, 투자 유치는 다른 공동창업자가 전담했으니 커리어 내내 돈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좋게 말해 도련님, 나쁘게 말해 물정 모르는 샌님처럼 기획을 해왔다. 대구에 내려와 처음 했던 일도 2만 원쯤 하는 고급 커피를 6천원에 파는 등 끊임없이 까먹기만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벌어본 적도 없고 벌 기술도 없으니 호주머니는 늘 쪼들리는데, 그나마 할 줄 아는 건 그런 류(?)의 기획들이라 남들에게 말 못할 괴로움만 쌓이는 형편이다. 그런 짓을 벌써 2년이나 해왔으니!

"두부 장수는 두부밖에 팔 수 없다."

얼마 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남긴 말을 우연히 알게 됐다. 비슷한 영화만 만든다는 비난에 대한 나름의 항변이었는데, 어쩐지 그 말이 내게 위로가 됐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여전히 나만의 작은 두부 가게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떻게든 두부라도 근근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고, 그 두부에 나름의 '있어빌리티'는 있다는 점일 테다. 굳이 포장하면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 자본'쯤 되려나.

아무튼 요즘 여러 채널로 문의가 많은데, 제게 혁신적인 무언가를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드릴 수 있는 게 두부밖에 없는, 두부 가게를 벗어나려다 실패한 두부 장수랄까, 뭐 그런 사람이니 말입니다.

영남일보 기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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