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은 대학 친구들과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 <현기증>(1958)을 보고 '아, 나도 영화를 찍어야겠다!' 마음먹습니다. 작은 재즈바 사장님이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장에서 외국인 용병이 친 2루타를 보고 불현듯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강이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물론 아버지(한승원 작가) 영향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1984년,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임철우 단편소설 <사평역>이 계기였습니다.
"..<사평역>이란 단편을 읽으면서, 특정한 주인공이 소설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한밤의 어둠과 눈, 작고 추운 역사와 톱밥 난로의 불빛, 어쩌면 인간의 삶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내적인 리듬을 가지고 끝까지 흘러가는 게 무척 놀랍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나름의 방식을 가진 소설을 언젠가 쓰고 싶다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게 기억 납니다."(한강, 인터뷰에서)
첫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건 꽤나 소중하고 진귀한 일입니다. 아마 한강 역시 뭇 작가지망생들에게 '첫 순간'을 선사했을 테고, 조금만 기다리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보았을 때 문득.." 하는 등단 인터뷰가 쏟아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고상한 문학적 충격과 영감이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비일상적인 질문과 고민을 안깁니다. 이런 느낌이랄까요. "내가 본 인간은 이래요. 당신은요?"
"예전에 <채식주의자>를 보면서 몇 번이나 멈추고 괴로워하고 다시 읽고 괴로워하던 게 떠올라요."
"저도 주변에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 해서 <소년이 온다>를 봤는데, 내용이 너무 딥해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7월 <모각독:디 에센셜> 작가는 한강. 참가자들 공통점이라면 한강 작품을 여느 소설처럼 한 큐에 술술 읽어내지 못했단 겁니다. 아마 인간 심연을 들여다보는 한강의 어둡고 공허한 시선이 피치 못할 거북함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겁니다. 한 참가자는 "소설 읽기가 두려워 일부러 산문 파트부터 읽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면모가 90년대 등단한, 비교적 가볍고 산뜻한 동년배 4세대 작가들과 한강이 구분되는 결정적 이유일 겁니다.
사실 저는 한강 문학 해설서격인 논픽션 <한강격류> 읽느라(여기서 임철우 관련 내용, 이상 관련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디 에센셜>은 펴보지도 못했습니다. 한강 작품에서 임철우 단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시인 이상이 남긴 시작詩作 메모 '나는 인간만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 줄이 한강 작품 속에서 어떻게 발아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역시 흥미진진 모각독. 7월에는 내내 한강만 읽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LtnQTizj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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