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는 법
Sep 19, 2024

<예술가가 되는 법>(2020)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소품샵 <사사로운>에서 열리고 있는 '어떤 기세' 전시에 들렀다가 우연히 턱, 눈에 치인 책입니다. 완독까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얇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저 나름대로 이 책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만) 일단 저의 독서법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저에게 독서는 '두세 줄 얻어가는 것'입니다. 책을 읽기 전 늘 이렇게 다짐합니다.

그래, 뭔 말을 할진 모르겠다만 딱 한 놈만 걸려라. 가장 삐딱해 보이는 놈, 그 놈만 팬다!

이것은 경험과 확신에서 나온 방법입니다. 저의 가늘고 긴(?) 독서경력에 비춰보면 아무리 재밌고 훌륭한 책이어도 결국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꼴랑 두세 줄뿐이며, 놀랍게도 그 두세 줄만으로도 어느 정도 책에 대해 아는 척(!)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와, 이런 문장이!', '오, 이런 내용이..!' 밑줄 혹은 페이지 귀퉁이를 접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애써 뜯어말리곤 합니다.

너, 어차피 다 까먹을 거잖아? 제발 흥분하지마. 넌 이 책 다 읽어도 두세 줄이 전부야. 절대 기억 못해. 그 한 번뿐인 찬스, 정말 여기다 쓸 거야?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훌륭한 책입니다. 밑줄의 욕망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불쑥불쑥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결승에 오른 후보는 3개입니다.

1)예술은 의심받는 것이다.
예술은 열려 있다. 예술은 설명과 작품 그 자체의 틈 사이에 존재한다. 그 틈으로 인해 예술가와 관객 모두 의심을 품게 되며 의심은 신뢰의 신호다. 의심은 새로움을 허락한다. 숨막힐 듯한 확신을 없애준다. 확신은 호기심과 변화를 제거한다.

이 대목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꽤 고상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슬쩍 꺼내기 좋아 보입니다. "음.. 그런데 혹시 제리 살츠라고 아니? 어, 몰랐다고?ㅎ 201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명한 비평가거든? 근데 이 사람이 정의하기를.." 하며 말입니다. "틈에서 나온다. 그 틈에서 나오는 의심이 (호기심과 변화를 제거하는) 확신을 없애준다"는 표현은 외워두면 분명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2)작품은 시詩다.
자신을 '무슨무슨 아티스트'라는 식의 하나의 틀로 정의내리지 말라. 그냥 남들이 알아서 부르도록 내버려두라. 나(저자)는 로버트 라우센 버그가 자신의 '콤바인 아상블라주'를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시'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도 재료의 시인이다.

사실 이 대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즉 "시詩 삽니다" 프로젝트 때문에 가산점을 얻었습니다. '로버트 라우센 버그'라는 이름이 초면이었는데, 방금 이 글을 쓰며 구글에 쳐보고서야 '아 이 작품!' 깨달았습니다. 작품은 구면인 듯하니 아마 꽤 유명한 사람일 겁니다. 이름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기억에만 남길 수 있다면 "아상블라주로 유명한 미국의 로버트 라우센 버그도 자기 작품을 '시'라고 표현했죠. 시란 그런 것 아닐까요?" 유식한 척 해볼 수 있을 겁니다.

3)예술은 동사다.
지난 200여년 간 예술은 깨끗하고 하얗고 조명이 잘 갖춰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예술은 늘 능동적이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가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도 예술은 우리 모두를 위해 행동한다. 예술은 방 건너편에 있는 당신을 보며 "거기 당신, 가까이 와봐, 난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라고 말한다.

...네,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 내용이 제 안에서 일어난 각축전의 최종 우승자이며, 그래서 이 책은 저에게 "예술은 동사다. 예술은 방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보며 '여, 일로 와봐라. 난 당신 삶을 바꿀 수 있다' 말하는 것이다"로 기억될 겁니다.(물론 운이 좋다면 앞의 두 내용도 꽤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글은 개천절에 열릴 <대구판 앙데팡당展> 작가 모집글을 어떻게 써야할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겁니다. 우연히 눈에 걸린 책을 슥슥 훑어보다가 '아니, 이런 좋은 내용이..!' 해서 쓰게 된 겁니다. 다 쓰고보니 정말 어디에선가 써먹기 좋은 내용들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기 당신, 가까이 와봐, 난(앙데팡당展) 당신 삶을 바꿀 수 있어! 6달러만 낸다면 말이지."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AGObiwyHp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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