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이 입양기
Dec 28, 2024

1. D동물병원

"...저희한테 맡기시는 건가요?"
"오! 병원에 맡길 수도 있는 건가요?! 아까 중구청 전화해보니까 손바닥 크기 정도면 안 데려간다던데... 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런데 저희가 열흘 정도 데리고 있긴 한데요, 이때 입양 안 되면 안락사될 수 있어요. 이렇게 어리고 아파서 온 친구는.. 거의 데려갈 사람이 없을 거예요. 어떡하실래요?"
"........네?"

2. 유락

"...크리스!! 이렇게 추운데 밖에 내쫓으실 거예요? 이 애기를. 눈도 못뜨는데..!"
"으아아아아아!!! 지붕! 고양이 두 마리 키우시잖아요. 얘 키츠네 데려가면 안 돼요? 키츠네에서 키우면 되겠네. 저 동물 키워본 적도 없고 키울 마음도 없어요..."
"그건 좀...어쩔 수 없겠네요. 그럼 밖에 내놓으세요. 이 추위에 어떻게 될 지...눈도 저렇게 아파보이는데..."
"으아아아아아!"

3. 디스코드

'덕구 아버지 덕구(나니 고양이) 친구 생긴듯. 이름 : 락유'<지붕>
'절대... 일단 치료만 하기로 했는데 치료비가 9만원....'<크리스>
'그럼 데리고 살아야져. 락유 하이'<나니>
'으악 귀여워 ㅜㅜㅜ'<망글이>
'망글이가 데려가유'<크리스>
'락유우우 망글 너무 데려가고 싶지만 남자친구가 고양이 알러지....'<망글이>
'정드는 중 실시간 과정 멋있습니다'<에이든>
'이젠 뭔가 빼박 아닐까 먼가 깨끗해졌다 이름 머에여'<씅>
'저는 락유로 뷰르기로 했는데 모르겍어요 라뀨 귀엽지 않나요 라뀨~'<지붕>
'유미 어때여'<씅>
'ㅋㅋㅋㅋ애인같고 좋다 유미랑 밥먹는중 유미랑 노는중 유미랑책읽는중'<지붕>
'락유 입양완?'<나니>
'아직은 지켜보기'<크리스>
'유미 : "버리지 마세요'<씅>
';;;'<크리스>
'무스탕 어떰 먼가 멋진뎅'<씅>

4. 유락

"...민초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동물 키워본 적도 없고, 사실 좀 부정적이거든요. 사회부 기자 시절에 유기동물 취재를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혹시 한 해 버려지는 건수가 몇인지 아시나요? 매년 10만 마리가 넘어요. 게다가 거의 대부분 여름 휴가철에 집중되죠. 맡아줄 사람 없다고, 휴가지에서 귀찮다고 버리는 거예요. 인간 참 잔인하다 생각했죠."
"저도 키워본 적은 없는데... 아기 고양이 키우기 유튜브로 거의 마스터했습니다. 제 생각엔 키우셔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저도 벌써 얘랑 정든 거 같아서.. 사료값 보태시라고 저도 자주 놀러올게요."
"......"
"음, 이름은 우동 어떠세요? 아까 저희 지하실에서 구조할 때 우동 박스에 넣어서 왔잖아요."
"...네...고려해보겠습니다.."

5. 유락

"...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크리스, 어제 우리 이거 얘기한 거 기억나요?"
"네? 뭔 얘기?"
"우리 어제 술 마실 때 그거 얘기했잖아요. '갑자기 길고양이가 가게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네? 전혀 기억 안 나는데요? 그런 얘기를 했다고요? 제가 뭐라 했죠? 아니, 분명 '절대절대절대 그럴 일 없고 절대 안 키움' 이랬죠? 안 봐도 뻔함.."
"네 큭큭큭. 그래서 저랑 오빠랑 아까 '와, 어제 그런 얘기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네 하고 되게 신기해 했어요. 그치 오빠."
"응. 이 녀석, 제 손은 피하는데, 크리스 손은 안 피하네요. 크리스 이제 외롭진 않겠네요."
"네..?"
"뭔가 정신 없어서 외로울 겨를이 없을 거란 얘기...ㅎㅎ"
"...."


그렇습니다. '6개월 회고', '망글이랑 별안간 충북 괴산 다녀온 썰', '연탄 엽서 시리즈' 등등의 글을 써야 하는데, 온통 신경이 이쪽으로 쏠리는 탓에 결국 내면의 해소(?) 차원에서 자초지종을 써봅니다.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이 고양이는 눈이 아파 어미로부터 저희 지하실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 어제 발견되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굶어죽었을 겁니다.

아직 이름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비주류 팀원들은 제가 뚝딱거리거나 곤란해 할 때면 아주 좋아 죽습니다. 자기들끼리 신나서 난리입니다. 각자 자기 맘대로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만...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우연성을 배제하고 계산 가능한 범위에서만 인생을 설계하다 보면, 인생은 살만한 게 못됩니다."(스가쓰케 마사노부) 이 사건은 우연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구에 내려와 배운 건 인생에서 우연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란 것이었습니다. 이 우연의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아기 고양이 포획(?)에 도움을 주신 지붕과 민초에게 감사드​립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EHSpK4z0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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