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찜 좋아하세요?"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오픈 때였습니다. 저녁 8시쯤 2층 마감(그때는 일찍 열고 일찍 마감했습니다)을 하고 내려오니 마당에 <동성>의 에이든과 연우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아까 들어보니까 혼자 국밥 드신다길래..." 나중에 알고보니 MBTI가 'I'로 시작하는 이 두 분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민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대구라는 낯선 도시에 혈혈단신 내려온 저에게 다른 카페 사장님들과 무언가 함께할 수 있는 거구나, 상상력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저도 카페하는 사람입니다."
한 손님이 바 끄트머리에 앉아 <데미안>을 읽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질문에도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뚝뚝하게 표정 변화 없이 수시간을 앉아 있던 손님은, 저의 끈질긴 두드림(?)에 결국 자신의 정체를 슬쩍 밝혔습니다. <낭만젊음사랑>의 나니였습니다. 그 역시 어디서도 자기를 밝히지 않는 캐릭터였습니다.(심지어 자기 가게에서도 사장님 아닌 척 시치미를 뗍니다) 나니는 보기 좋게 망한 첫 <실패공유회>에 참석한 2명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이 이름도 생소한 모임에 왔던 건, 연민 때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저희도 요 앞에 카페를 여는데요.."
'두 가게 모두 같은 사장님이 하는 거 아니냐'며 종종 오해를 빚는 <키츠네> 푸딩, 지붕과의 만남을 떠올리면 지금도 실소가 터집니다. 한 번 오면 너댓잔씩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가던 정체 불명의 두 남녀. 이 동네에서 보기 힘든 미모와 훤칠함을 지닌 그들을 보며 '이것이 말로만 듣던 단골 손님인가?' 흡족해했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커피는 모두 공사 인부들의 몫이었고, 그들의 정체는 일종의 경쟁자(?)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혹시라도 나중에 제가 오해를 할까봐 용기내 고백했다고 합니다. "비주류"라는 키워드는 나중에 친해진 이들과의 대화에서 툭, 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사장님, 저는 늘 죽음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휴어커> 씅과의 첫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진심으로, 이상한 사람 같았습니다. 일단 외모부터 비범했습니다. 양 팔뚝에 각각 새긴 큼직한 문신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펑퍼짐한 반바지와 검정색 하이싹스의 매칭, 눈을 살짝 가리는 긴 앞머리며 코끝에 걸쳐만 놓은 안경, 그 너머 어쩐지 나른해보이는 눈동자까지. 무언가 "진짜"처럼 보이던 그가 이렇게 밝고 유쾌한 사람이라고는 그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와는 서로 "어둠의 유락"이니 "빛의 휴어커"니 하며 투닥대며 놀곤 합니다.
"제가 답답해서 그런데..여기 와서 좀 앉아보세요."
이번 에피소드에 처음 참여한 <대구플러스> 디피는 대구의 멋진 카페들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입니다. 가오픈 때 유락을 찾은 그는 지도에도 등록되지 않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는 유락을 보며 뭔가 마음이 쓰이는 눈치였습니다. 다른 인플루언서들이 한바탕 훑고 지나갔음에도 끝까지 자리에 남아 왜 인스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제 폰을 가져가 직접 계정을 만들어주었는데, 그게 바로 이 유락 계정입니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저는 그때 그런 SNS를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상황도 싫었지만, 내색을 못해 하란 대로 했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소통 창구를 열어준 디피에게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할 얘기가 조금 있을 거 같은데요?"
아마 아트커머스 <에온드에온>의 망글이가 없었다면 이번 앙데팡당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니, 지금처럼 디테일을 챙기진 못했을 겁니다. 밤샘 모각작을 찾아온 그녀의 정체를 알고, 머릿속 경고등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직감이었습니다. '이 사람, 우리에게 필요하다.' 전시회를 열자 가닥은 잡았지만 문제는 우리 중 아무도 '예술' 언저리에도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녀는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저, 정말 신기해요. 이게 팀웍인가..? 회의 때 별 얘기 안했던 것 같은데 지나면 뭔가 만들어져 있고.." 망글이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 스타트업 경험상 단언컨대 이 모든 건 그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할 얘기가 더 많은데 분량이 넘쳤습니다. 이 모든 우연과 인연이 만들어낸 결과가 저도 궁금해집니다. 오늘입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DApoJ0gvl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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