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에 문을 달았습니다
Aug 20, 2024

3층에 문을 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로소, 비어있던 3층을 채워보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형편상 직접 만들어야 하는 처지이니 완성까지 꽤나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러는 동안 틈틈이 이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기획의도가 담겼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등을 꾸준히 연재(?)해볼 생각입니다. 그, 첫번째 글입니다.

이런 공간을 만들 생각입니다. 좀더 다듬고 깎아야겠지만, 일단 이 공간의 이름은 '물물物物'로 정했습니다. 네, '물물교환' 의 그 물물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 속으로 정한 이 공간의 컨셉은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물물'에 영감을 준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다시입다연구소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 있을 때 동료였던 데빈(실패공유회 : 호스트D 참고)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알리고 의류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비영리 스타트업"입니다. 데빈이 데려가줘서 알게된 21%파티는 쉽게 말해 물물교환의 장場입니다. 안 입는 옷을 행사장에 가져가면 가져간만큼 티켓을 주는데, 이 티켓으로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놓은 옷을 가져가는 시스템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옷을 제출할 때 스토리까지 써서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자유입니다. 어디서 샀는지, 누구에게 선물받았는지, 어떤 추억이 담겼는지, 옷에 관련한 어떤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참가자들은 옷과 옷에 달린 메모를 나란히 살펴보며 티켓과 바꿔갑니다. 즉, 옷만 '띡' 들고 오는 것이 아닌, 옷에 담긴 스토리를 교환하는 셈입니다.

2)무무당

김광석 거리에 있는 중고서점 <북셀러>가 운영하는 무인판매책장, 무무당無無堂은 근처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무는, 책장의 주인과 운영시간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가게 바깥에 놓인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의 가격은 2000원. 책장 앞에 붙은 계좌번호로 스스로 돈을 입금하고 가져가는 시스템입니다. 양심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플랫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덩그러니 서 있는 책장의 모습이 영감을 받은 포인트였습니다.

3)사사私思로운

대구 약령시 근처 소품샵 <사사로운>은 "사적인 공간을 위한 사려깊은 물건을 소개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사로운을 운영하고 있는 피치는 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고 있는 '예사모임'(브랜딩 스터디)의 호스트입니다. 얼마 전 말로만 듣던 사사로운을 직접 눈으로 보니, 저에게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물물' 관련해서 도움이 된 건 한자로 된 두 글자 이름이 주는 묵직함, 여운, 타자기로 쓴 메모들을 이용한 넛지(유저를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장치), 대구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은 점 등이었습니다.

4)일상환기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위치한 <일상환기>를 운영하는 고보 역시 '예사모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예약 시스템으로 무인 운영되는 쉼터, 일상환기는 사실 고보를 알기 전부터 많은 분들의 추천을 받아 직접 가본 적이 있는 공간입니다. 시스템이 흥미롭습니다. 예약 시간 즈음이 되면 문자메시지로 번호키로 잠긴 문 비밀번호를 전달받고, 시간 맞춰 공간을 즐기고 나서는 시스템입니다. 안에는 커피를 직접 내릴 수 있는 머신과 셀프바, 키오스크 기능이 있는 결제 단말기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번호를 알려주어 직접 잠긴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5)낭만젊음사랑

눈치 빠른 분들은 예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물물'은 무언가를 교환하는 공간입니다. 그 무언가를 '시詩'로 정한 결정적 계기는, 낭만 젊음 사랑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작가 안리타의 시집 때문이었습니다. 비주류 회의 도중 잠시 시간이 남아 책장을 둘러보던 중 "구겨진 편지는 고백하지 않는다"는 시집을 펴보게 되었고, 이내 그 안의 문장과 통찰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기본적으로 시인詩人에 관한한 장정일의 시각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시인이기도 한 장정일은 늘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합니다. ...

얘기가 또 길어진 모양입니다. 다음에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 원문: https://www.instagram.com/p/C-4PrJBPGvU/

YOORAK_GALLERY:C-4PrJBPGvU_cov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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